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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을 500만 원 올리기 위해 이직을 준비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그게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다듬으면서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해결할 수 있게 됐는지'를 쓰려고 하니 손이 멈췄습니다. 연봉 숫자는 있었지만, 능력의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커리어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직 타이밍, 연봉보다 먼저 봐야 할 것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직 유혹을 받습니다. 특히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몇 년 차에 연봉 얼마 올렸다'는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저도 그런 글들을 보며 지금 내가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조급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직을 자주 했을 때 시니어 리더들이 이력서를 어떻게 읽는지가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잡호핑(Job Hopping), 즉 짧은 주기로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방식은 연봉 상승처럼 보이지만, 채용권자 눈에는 '방향성이 없는 사람'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여기서 잡호핑이란 2년 미만의 재직 기간을 반복하며 회사를 옮기는 패턴을 뜻합니다.
반면 이직을 부서 이동하듯 자연스럽게 여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연봉을 협상 도구로 쓰지 않고, '이 조직이 내 강점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연봉 협상에 집중할수록 정작 그 조직이 나에게 어떤 문제를 줄 수 있는지는 놓치게 됩니다.
이직의 건강한 타이밍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내 강점이 조직이 평가하는 방향과 지속적으로 어긋날 때입니다. 이건 내가 일을 못 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의 전략 방향이 바뀌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둘째, 내가 부족해서 불편한 상황은 이직이 아니라 개선이 먼저입니다. 그때의 이직은 회피(Avoidance)에 가깝고, 다음 조직에서도 같은 문제를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직 기간 1년 미만 이직자의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빠른 이동이 일반화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왜 옮기는가'의 서사가 더 선명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강점과 조직의 평가 방향이 지속적으로 어긋날 때 → 건강한 이직 신호
- 연봉 50만 원 차이 때문에 옮기는 것 → 잡호핑으로 읽힐 위험
- 내 약점 때문에 불편한 것 → 이직보다 역량 개선이 먼저
- 이직 인터뷰에서 확인할 것 → 이 조직이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문제 정의 능력이 커리어를 나눈다
채용 면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1년밖에 못 다닌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싶어서 지원했습니까?" 저는 당시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회사에 합격하고 싶다는 목표가 너무 컸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막연했습니다.
일잘러(고성과자)를 설명하는 개념 중에 '겟팅스턴(Getting-Ston)'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겟팅스턴이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까지 이어지는 실행 사이클을 스스로 완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단순히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까지의 경로를 사고 실험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실행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AI를 업무에 사용하면서 이 차이가 훨씬 선명해졌습니다. 프롬프트를 잘 쓰면 빠른 결과물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이 정말 좋은 질문에서 나왔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시니어를 위한 키오스크 교육 방법'을 묻는 것과 '교육이 필요 없는 키오스크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같은 AI를 사용해도 결과의 수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느냐가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이란 실제로 실행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상황을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현상을 보고 A는 B다라고 결론 내렸다면, 'A는 C다', 'A는 D다'처럼 여러 반대 관점을 스스로 만들어 검증해보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AI에게 던지는 질문의 질이 달라졌고, 그 답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도 함께 생겼습니다.
리질리언스(Resilience), 즉 회복 탄력성도 중요한 역량으로 꼽힙니다. 여기서 리질리언스란 스트레스나 실패를 겪은 이후 다시 제 상태로 돌아오는 심리적 복원 능력을 뜻합니다. 채용 면접에서 스트레스 해소 방식을 묻는 이유도 이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미리 가늠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을 잘하는 것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 시대 일잘러의 조건과 성장 중심 커리어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성장하는 산업, 성장하는 회사, 성장하는 직군이라는 세 가지가 겹치면 연봉은 따라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몇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봉은 아웃컴(Outcome)이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여기서 아웃컴이란 내가 만들어낸 성과와 능력이 시장에서 평가받은 결과물을 뜻합니다. 이 관점은 연봉 협상에만 에너지를 쏟는 것을 경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하지만 연봉은 동시에 내 노동이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보상받지 못하는 시간도 나중에 써먹을 수 있으니 지금은 몰입하라'는 조언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경제적 여건, 가족의 상황, 건강 상태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성장을 강조하는 커리어론이 자칫 '지금의 고통을 미래 투자로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시대에 일잘러를 다시 정의한다면, 저는 유연성(Flexibility)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유연성이란 어제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공식을 오늘 의심하고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AI가 빠른 답을 줄수록, 사람의 역할은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와 '그 답을 믿어도 되는가'를 판단하는 쪽으로 이동합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보고서에 따르면, AI 도입 이후 가장 대체되기 어려운 역량은 복잡한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좋은 커리어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가 넓어지는 커리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범위를 넓히는 데 AI는 좋은 도구입니다. 단,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여야 합니다.
요약: AI 시대 일잘러는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를 쓰기 전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직할 때 연봉 협상은 하지 말아야 하나요?
A. 협상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연봉 협상이 이직의 주된 목적이 되면, 조직이 나에게 어떤 문제를 줄 수 있는가보다 당장의 숫자에 집중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 조직이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를 먼저 확인한 뒤 협상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했습니다.
Q. 주니어 때 이직을 자주 하면 커리어에 불이익이 생기나요?
A. 이직 자체보다 이직의 서사가 중요합니다. 연봉을 조금씩 올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옮겼다면, 시니어 리더 입장에서는 방향성이 없는 잡호핑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반면 각 이직에 '이 문제를 풀고 싶었다'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이직 횟수보다 그 맥락이 훨씬 강하게 작동합니다.
Q. AI 시대에 프롬프트 학원을 다니는 게 도움이 되나요?
A. 기술적인 프롬프팅은 배울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좋은 질문은 프롬프트 기법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서 나옵니다. 저도 AI를 자주 쓰면서 느낀 건, 질문의 수준은 내가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가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프롬프팅은 도구고, 사고 능력이 그 도구를 결정합니다.
Q. 일은 잘하는데 팀워크가 약한 사람, 채용될 수 있나요?
A. 코처빌리티(Coachability), 즉 코칭을 받아들여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코처빌리티란 외부의 피드백을 수용하고 실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개방성을 뜻합니다. 일을 잘하면서 팀 협업이 약한 경우, 그 부분을 개선할 의지와 가능성이 보인다면 충분히 채용 대상이 됩니다. 다만 팀 분위기를 해치는 수준이라면 리더 입장에서 감당 가능한지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결론
커리어를 돌아보면, 제가 가장 성장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연봉이 오른 날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사에게 물어봐야 했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 능력은 회사를 옮겨도 남았고,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서 더 빠르게 작동했습니다.
성장 중심의 커리어론은 분명 유효합니다. 다만 성장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봉을 위해 일해도 됩니다. 안정을 위해 일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자산을 남기는지를 계속 점검하는 것입니다. AI 시대일수록 이 자기점검이 더 빠르게, 더 자주 필요해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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