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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기획서 초안을 10분 만에 뽑아내는 시대, 그래도 결국 방향을 정하는 건 사람입니다. 저도 처음엔 생성형 AI를 그냥 빠른 검색 도구쯤으로 썼는데, 쓰면 쓸수록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결과의 수준을 완전히 갈라놓는다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이 글은 AI 도구가 넘쳐나는 지금, 사람이 키워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를 제 경험과 함께 정리한 글입니다.

질문 설계 — AI를 쓸수록 이게 전부더라고요
일반적으로 AI를 잘 쓴다는 건 프롬프트를 잘 짠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제가 직접 써봤을 때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프롬프트 기술보다 먼저 "내가 지금 무엇을 알고 싶은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이 훨씬 좋은 결과를 뽑아낸다는 겁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AI에게 어떤 맥락과 조건을 줘야 원하는 답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 기술의 본질은 결국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으로 귀결됩니다. 질문이 모호하면 AI의 답변도 교과서 수준에 머물고, 목적과 제약 조건이 구체적일수록 실제로 쓸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과제를 준비하거나 글을 쓸 때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어떤 내용을 앞에 세울지, 무엇을 덜어낼지는 결국 제가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AI는 제 생각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 가설을 검증해 주는 도구에 가깝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내가 "이렇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먼저 세워 놓고, AI한테 "이 방향이 맞아?"를 물으면 훨씬 날카로운 대화가 됩니다.
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가장 큰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영역은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니라 지식 근로자의 문서 작성·분석·의사결정 지원 업무입니다. 그 말은 곧, AI를 쓰는 사람이 "무엇을 만들지"를 먼저 결정하지 않으면 AI는 방향 없는 초안 기계에 그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젠다 세팅이란 어떤 문제를 논의의 중심에 올려놓을지 먼저 결정하는 능력, 즉 질문거리 자체를 선점하는 역량을 말합니다. AI 시대에 이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실행은 AI가 빠르게 해 주지만, 무엇을 실행할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키워드 장악력 — 단어 하나를 정의하지 못하면 팀 전체가 흔들립니다
일반적으로 기획을 잘한다는 건 아이디어가 많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13년 차 기획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이 "단어를 정의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글을 쓰거나 발표를 준비할 때 핵심 키워드를 사전적 정의로만 끌어다 쓰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키워드 장악력이란 특정 단어나 개념을 자기만의 언어로 정의하고, 그 정의를 일관되게 사용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을 잡아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단순히 유행어를 많이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게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그 단어를 듣는 디자이너, 개발자, 영업 담당자가 각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앞단에서 기획하는 사람이 애매한 단어 뒤에 숨으면 뒷단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는 원리입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어 하나의 정의가 이렇게까지 중요할 줄은 몰랐거든요. 어떤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전적 정의를 먼저 찾아보고, 그 다음 "이게 내 맥락에서는 어떤 의미인가"를 따로 정의해 보는 습관을 들이면 생각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그렇게 정의한 키워드는 나중에 새로운 관점이 더해질 때마다 업데이트할 수 있고, 그 업데이트 과정 자체가 자기만의 언어를 다듬는 훈련이 됩니다.
이와 관련해 출처: OECD Future of Work 보고서에서도 미래 핵심 역량으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와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았습니다. 비판적 사고란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그 의미와 전제를 직접 검토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키워드 장악력은 결국 이 비판적 사고가 언어 사용에 구현된 형태입니다.
키워드 장악력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팀 회의에서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먼저 정의를 제안하는 사람이 토론의 주도권을 가집니다.
- 보고서나 기획서를 쓸 때 핵심 개념을 자기 언어로 정의해 두면 문서 전체의 논리가 훨씬 일관되게 흐릅니다.
- AI에게 질문할 때도 애매한 단어를 쓰면 AI도 애매한 답을 줍니다. 내가 먼저 단어를 정의한 뒤 물어야 원하는 수준의 답이 나옵니다.
- 새로운 유행어나 트렌드가 생길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그 트렌드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서사력 — 규칙 없이도 이야기는 통한다는 걸 믿습니다
스토리텔링을 잘하려면 기승전결 구조나 스토리 프레임워크를 익혀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구조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가?"를 스스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구조는 이야기가 생긴 다음에 입히는 옷이지, 구조가 이야기를 만들어 주진 않습니다.
서사력(Narrative Ability)이란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타인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페라를 예로 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어도, 음악의 규칙도 모르는 사람도 무대 위 서사는 바로 느낄 수 있다는 것. 결국 사람은 규칙이 아니라 이야기에 반응한다는 말입니다.
취소선 이야기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취소선을 "과정선"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와닿았던 건, 제가 실패했던 경험을 기록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보면 당시엔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흔적들이 다음 시도의 실질적인 참고 자료가 되더라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항해에서 수정된 좌표값을 지우지 않고 취소선으로 남겨 두는 것처럼, 실패와 수정의 흔적 자체가 서사가 됩니다.
요즘은 결과물만으로 사람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까지 함께 보는 시대입니다. 이 흐름은 개인도,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자꾸 이야기를 꺼내 놔야 사람들이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유대감을 갖는데, 그 이야기의 재료는 결국 자기가 겪고 고민했던 것들입니다.
평소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다른 상황에서도 통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습관이 있는데, 이게 나중에 이야기를 꺼낼 때 재료가 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자기가 궁금해했던 것, 고민했던 것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게 서사력의 출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가 기획도 해준다는데, 기획자는 앞으로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A. AI가 초안을 만들어 주는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을 때,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은 AI가 대신해 주지 못했습니다. McKinsey 보고서에서도 생성형 AI가 가장 크게 대체하는 영역은 단순 반복 업무이고, 의사결정과 방향 설계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습니다. 오히려 AI가 실행을 빠르게 해줄수록, 앞단의 기획 능력이 결과의 수준을 더 크게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키워드 장악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쓰려는 단어마다 "내가 생각하는 이 단어의 정의는 무엇인가"를 먼저 적어 보는 것입니다. 사전적 정의와 자기 정의를 나란히 놓고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점점 자기 언어가 생깁니다. 새로운 경험이 생길 때마다 그 정의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Q. AI한테 가설을 검증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요?
A.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답이나 방향을 먼저 정해 둡니다. 예를 들어 "이 브랜드는 아마 이런 메시지를 핵심으로 삼았을 것 같다"는 가설을 세운 뒤, AI에게 "이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반복되는 메시지가 있는지 분석해 줘"라고 묻는 식입니다. 가설 없이 열린 질문만 던지면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정보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내 가설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쓰면 생각이 훨씬 단단해집니다.
Q. 서사력을 키우려면 글쓰기 훈련을 따로 해야 하나요?
A. 글쓰기 훈련도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자기가 고민한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는 습관입니다. 좋은 강의나 영상을 보고 "맞아, 저렇게 해야지"로 끝내지 않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를 한 번 더 자문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재료가 쌓입니다. 실패나 수정의 흔적을 기록해 두는 것도 서사력의 원료가 됩니다.
결론
AI가 등장할 때마다 "내가 가진 역량으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생기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직접 써보면서 느낀 건, 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 단어를 자기 언어로 정의하는 키워드 장악력, 그리고 경험을 이야기로 꺼낼 줄 아는 서사력. 이 세 가지는 AI가 빠르게 실행해 줄수록 더 중요해지는 역량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AI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윤리적·사회적 영향을 판단하는 능력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질문을 잘 만드는 것과 그 답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세트입니다. 앞으로 AI를 쓸 때 단순히 답을 얻는 수단으로 쓰기보다, 내 가설을 검증하고 더 나은 질문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근육을 꾸준히 키워 나가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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