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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프로젝트가 연속으로 쌓이던 시즌이 있었습니다. 일이 몰릴수록 감정적 여유가 사라지고, 결국 관계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 하나로 계속 일이 몰리는 구조, 그 악순환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제가 직접 겪고 정리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번아웃의 구조: 왜 잘하는 사람이 먼저 쓰러지는가
번아웃(Burnout)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의지가 약한 사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신체적·정서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공식 직업 관련 현상으로 분류했을 만큼, 이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출처: WHO).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일이 많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상급자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잡았는데, 그 회의가 팀원들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막힌 걸 풀어주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그 회의 시간에 해야 할 실제 업무를 못 하게 되고, 결국 밤늦게까지 일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지친 상태로 밤에 억지로 일하니 효율은 바닥이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맑은 머리로 집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악순환이었습니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 밀도(labor density)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노동 밀도란 단순히 일한 시간의 양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안에 얼마나 집중적으로 성과를 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밤 9시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과, 오전 두 시간을 완전히 몰입해서 일하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조직이 아직도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을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놓치기 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업무 배분의 불균형 문제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많이 몰리는 건 단기적으로는 팀 성과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람을 조직에서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퍼레이션 엑설런스(Operational Excellence), 즉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업무 부하를 떠안게 되는 역설이 반복되는 겁니다.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 용량(capacity)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그걸 무시하면 결국 조직 전체가 손해를 봅니다.
- 불필요한 회의가 몰입 시간을 잠식하면 야근이 구조화된다
- 일 잘하는 사람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구조는 번아웃을 예약하는 것과 같다
- 노동 밀도 없이 노동 시간만 늘리는 건 성과도, 지속 가능성도 없다
- WHO도 인정한 직업 현상, 번아웃은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워킹과 우선순위: 악순환을 끊는 실전 방법
그 시즌이 끝나고 저는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구조의 문제를 알면서도 그 흐름에 그대로 휩쓸렸다는 사실이요. 이후 저는 의식적으로 그 악순환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핵심은 스마트워킹(Smart Working), 즉 시간의 양보다 일하는 방식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무엇에 집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경험상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하루를 명확하게 쪼개는 것이었습니다. 출근 전 고요한 아침 시간에 그날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오전 집중 블록에는 혼자 몰입해야 하는 업무를 배치합니다. 혼자 해야 하는 업무와 협업이 필요한 업무는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혼자 집중해야 하는 딥워크(Deep Work) 업무를 회의와 뒤섞으면 둘 다 제대로 안 됩니다. 딥워크란 인지적 요구가 높은 작업에 방해 없이 완전히 집중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략적 사고는 아예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우선순위 설정에 관해서는 조금 냉정하게 봐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업무 우선순위를 분기별, 월별로 사전에 합의해두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모든 조직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럴 때는 개인 차원에서라도 내가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좋은 일을 구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에 대한 이야기도 짚고 싶습니다. 업스킬링은 현재 직무에서 역량을 더 높이는 것이고, 리스킬링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HR 매니저가 되어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싶습니다. 조직이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1인분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라면, 어느 시점에서는 직무·직위 적합성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량을 갖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몫까지 계속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결국 번아웃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배려와 공정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번아웃인지 단순 피로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단순 피로는 충분히 쉬면 회복되지만, 번아웃은 쉬고 나서도 일에 대한 의욕이나 감정적 여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업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꾸 마찰이 생긴다면 번아웃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을 때도 관계에서 먼저 균열이 왔습니다.
Q. 회의가 많은 조직에서 딥워크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나요?
A. 출근 전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루 1~2시간이라도 방해받지 않는 집중 블록을 확보하면 회의 중심의 근무 패턴에서 오는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나 장소 이동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Q. 업무 우선순위를 혼자 정하는 게 가능한가요? 상사가 갑자기 일을 내리는 경우엔요?
A.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합의된 우선순위 업무가 있다는 사실을 상사에게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업무를 진행 중인데, 새로 주신 건 내일 오전으로 일정을 조율해도 될까요?"처럼 먼저 우선순위를 공유하고 조율하는 습관이 쌓이면 갑작스러운 업무 투하 자체가 조금씩 줄어들기도 합니다.
Q. 칼퇴를 하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서 못 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A. 칼퇴는 눈치 싸움이 아니라 오전부터 정해진 시간을 낭비 없이 보냈다는 자기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로 먼저 증명하고 나서 칼퇴를 실천하면, 처음엔 눈치가 보여도 점차 인정받는 방식이 됩니다. 조직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더라도 나부터 바꾸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결론
그 힘들었던 시즌이 1~2개만 더 이어졌다면 저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흐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악순환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번아웃은 나약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달리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일하는 시간의 양보다 노동 밀도를 높이는 것, 딥워크 블록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 에너지를 내일까지 가져가는 것. 이 세 가지가 결국 오래 잘 일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조직의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면, 그 안에서 자기 스스로 HR 매니저가 되어 경력과 컨디션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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